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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지역에는 많은 역사인물의 문화유산이 있다. 그 중에도 작은 시골 농촌 마을에 수십만 평의 소나무 숲속에 숨겨진 400여년의 역사문화유산이 고스란이 남아있다. 충남 홍성군 서부면 판교리 신촌마을에 난중에 난을 평정한 임득의장군의 사우와 묘역 정충사가 있는 보호구역이다. 고려 말부터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홍주를 중심으로한 내포 지역은 많은 선비들이 낙향지로 선호하여 찾은 곳이라 한다. 당대에 낙향한 덕망 높은 분들의 학행과 덕행이 후대에까지 가학(家學)과 교화를 통하여 전승됨으로서 일제 강점기에 홍성 지역에 활발했던 독립운동으로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이곳 임득의 장군의 가계에도 8명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하며 충절을 계승한다. 400여년간 숨겨진 산촌지역 역사문화 유산을 찾아 소개한다.
1) 임득의 장군의 생애와 활동
임득의(林得義, 1558∼1612)는 1588년 홍주 결성의 작은 마을로 입향한 송파 임식(林植, 1539~1589)의 둘째 아들이다. 평택임씨 충정공계의 가계는 대대로 가학을 통하여 문무를 겸비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가문이다. 특히 유가의 덕목을 교육하고 실천을 중시한 가풍이 전해진다(충북대학교 우암연구소 역주 송파유고 전문).
마을 입구에 서있는 신도비에 조선 말기의 문신이며 의병장이었던 지산 김복한(金福漢, 1860~1924)이 지은 비문에 임득의장군의 치적과 공을 상세히 기록하고있다.
2) 임진왜란과 이몽학의 난
임진왜란 초기 임득의는 선전관(宣傳官)의 직에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선전관은 국왕의 호위를 맡으면서 국왕의 명령을 전달하는 관직으로 문관이 담당하는 승정원의 승지와 대비하여 무관승지로 불릴 정도로 중요한 직책이었다.
또 다른 기록으로는 명나라의 원군과 수륙 합동작전을 전개하려는 시점인 1594년 9월 28일 36세 때 체찰사 군관으로 이순신을 방문한 기록이 보인다. 이 기록으로 의주에서 환도를 한 후에는 수륙 양군을 총괄하는 조직인 3도체찰사 무관으로 왜군과의 전투에 참여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임득의의 대표적인 공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중에 발발한 이몽학(李夢鶴)의 내란을 진압한 공이다. 전우후(虞侯) 박명현, 충청수사 최호, 전 병사(兵使) 신경행등과 함께 목사 홍가신을 도와 위기에 처한 홍주성을 구한 것이다.
3) 임진왜란 후의 활동
임진왜란이 끝난 뒤 전란의 과정에서 공을 세운 신하들에 대한 논공행상 논의를 거쳐 선무공신(宣武功臣), 호성공신(扈聖功臣), 청난공신(淸難功臣) 3가지 분야에 대한 공신 책봉이 이루어지게 되며. 임득의는 이 3가지 모두에서 공신호를 받게 된다. 1604년 청난공신 정공신(正功臣)에 책봉 되고, 1605년과 1607년에는 호성공신과 선무공신에도 원종 1등 공신으로 책봉되었다. 임득의는 팔형제와 가솔 모두를 이끌고 800명의 의병을 모아 반란군을 평정하는데 앞장서 17명의 일가족 모두가 홍주지역에서 공신으로 녹훈되는 보기 드문 사례를 남긴다.
4) 임득의(林得義) 관련 유적과 유물
임득의관련 문화유산은 홍성군 서부면 판교리 신촌 마을에 위치한다. 청룡산의 서쪽 산 아래에 분포되어있다. 영정을 봉안한 정충사와 묘역이 있으며, 마을 입구에는 신도비가 있다. 그리고 주변의 관련유적으로는 홍주 청난사와 홍양청난비, 백월산 정상의 산신각등이 있다. 유물로는 영정과 추증교지, 기타 전적 등 관련 유물이 전한다.(대부분은 충남 역사박물관과 홍성 역사기념관에 보관중임)
(1) 임득의 묘소(林得義 墓所, 충남 문화재자료340호, 지정일:1995.10.7)
최초의 묘역은 포천의 축석령에 있었으나 1632년 서부면 일대에 명당자리를 찾아 판교리 청룡산으로 묘소를 이장하였다. 임득의 묘는 정충사에서 동쪽으로 100m정도 떨어진 청룡산 서쪽 기슭 에 자리 잡고 있다.
(2) 임득의 신도비(林得義 神道碑)
홍성군 서부면 소재지에서 중리, 판교리 방향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3km 정도 가면 도로 왼쪽으로 정충사로 들어가는 마을길이 있는데, 林得義 신도비는 이곳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임득의 신도비는 정·측면 1칸의 비각 안에 보호되어 있다. 1917년 건립되었으며 신도비문은 지산 김복한(志山 金福漢)이 글을 짓고, 글씨는 윤용구(尹用求)가 썼다. 비문에는 임득의의 가계와 성장과정, 구국활동 배경 및 활동 내용, 임진왜란 당시와 이후의 공적 등이 담겨져 있다.
(3) 정충사(靖忠祠, 충남 문화재자료 401호, 지정일: 2009. 10. 20)
홍성군 서부면 중리에서 판교리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3㎞ 정도 가면 도로 왼쪽으로 정충사 입구가 나오고 정충사는 이곳에서 500m 정도 들어간 곳에 위치한다. 정충사는 청난공신 林得義를 제향하고 있는 祠宇로, 창건 연대는 1632년(인조 10)이다.
(4) 임득의 영정(林得義 影幀, 충남 유형문화재 203호)
임득의 영정은 별교서에 따라 당시에 그려진 청난공신의 대표적 무관 영정이다. 초상화의 크기는 가로 92.3cm × 세로 168cm로 제작됐다.
17세기 초반의 공신상(功臣像)의 전형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어 청난공신상을 연구하고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초상화로 보물급에 해당하는 중요한 초상화로 인정되고 있다. 현재 충남 유형문화재 203호로 지정되어 현재 충남역사박물관에 기탁 보관중이다. 신현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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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1-09 22: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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